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해에 있는 훙커우(홍구) 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 기념식장에서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대장인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비롯하여 일본의 고급 간부 어려 명을 살상하였습니다.
당시 중국 총통이였던 장개석(장제스)은 "중국 백만 대군이 못한 일을 일개 조선 청년이 해냈다"라고 감탄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일왕 생일 기념식은 고급 간부들이 대거 참여하는 만큼 경계가 심하였는데, 윤봉길 의사는 기념식장에 침투하기 위해 지체 높은 일본인으로 보이기 위장하였다고 합니다. 김구 선생이 준비해준 폭탄 (도시락, 물병 모양)을 지참하였고 의거에 성공하게 됩니다.

의거 당일 윤봉길 의사와 김구 주석의 일화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데요.
지체 높은 일본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복장은 물론 액세서리인 시계도 구입하게 됩니다. 거사 당일인 1932년 4월 29일 아침, 김구 주석과 마지막 식사를 하게 되는데요. 식사 자리에서 자기가 구입한 고급 시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김구 주석의 시계가 아음에 걸립니다.

당시 윤봉길 의사가 구매한 시계는 6원, 김구 주석이 갖고 있는 시계는 2원이었는데요.
윤봉길 의사는 김구 주석에게 시계를 바꾸자고 이야기합니다.
시계 바꾸기를 한사코 거절하는 김구 주석에게 윤봉길 의사가 남긴 말이 감동적입니다.
"선생님 저는 앞으로 이 시계를 한 시간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김구 주석은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합니다
"우리 지하에서 다시 만납니다"
김구 주석과 윤봉길 의사는 시계를 바꾸었고 윤봉길 의사는 현장으로 떠나 거사에 성공했고, 그리고 산화했습니다.

김구 주석은 이후 독립운동을 하며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윤봉길 의사가 준 시계를 항상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1945년 11월,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된 조국으로 귀국한 김구 주석은 충남 예산으로 가 윤봉길 의사의 가족부터 찾아 그 시계를 전달했습니다.
당시 일본 법에 의해 유품을 가족들에게 돌려주는데, 당시 김구 주석과 윤봉길 의사가 바꾼 2원짜리 시계를 가족들이 보관하고 있었고 두 사람의 시계가 다시 만나게 됩니다.

두 분의 시계는 현재 효창공원의 백범 기념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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