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는 유명한 공인이거나 돈이 많은 부자들에게 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인데요.
일부 대기업 회장이나 그의 가족들의 드라마에서 볼만한 상식 밖의 행동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하였습니다.
몰상식한 행동을 일삼은 기업인들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귀감이 될만한 삶을 살며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요.
前 LG그룹의 회장이자 현재는 고인이 된 故 구본무 회장입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소탈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미담이 일반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 청문회'에서였습니다.
청문회 당시 그의 발언은 평소 성품과 철학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당시 당시 하태경 의원의 질문에 대한 故 구본무 회장의 답변 일부


하태경 의원 : 명분만 맞으면 앞으로도 국가에서 돈 내라고 하면 다 낸다 이 말씀이세요?
구본무 회장 : 명분만 맞으면 여러 가지 안 있습니까? 연금이나 불우이웃을 돕기...
하태경 의원 : 정부에서 시키는 거 일단 거부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앞으로도 그러면 다음 대통령 들어서 뭐 좀 내라고 하면 다 또 들어주실 거예요? 또 나오실 거예요, 청문회?
구본무 회장 :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막아주십시오
잘못을 다그치기만 하는 국회의원의 말에 정부에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기업의 입장을 한마디로 대답하여 말문을 막히게 한 명언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이다 발언'으로 화자 되고 있습니다.
당시 대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하태경 의원은 지난 2018년 구본무 회장의 타계 이후 SNS에 '구본무 LG그룹 회장 별세'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였습니다.
"존경하는 구본무 회장이 돌아가셨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구 회장과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최순실 청문회장에서 만난 그분은 이 시대의 큰 기업인이셨다"라고 글을 남기며 애도의 뜻을 밝혔습니다.
권위주의 없는 대한민국 4대 기업 LG그룹의 총수

1995년, 아버지 故 구자경 명회 회장을 이어 LG그룹을 이끌기 시작한 구 회장은 20년이 넘게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본무 회장은 가족 간의 인화(여러 사람이 서로 화합함)를 중시하였습니다.
해서 사람들은 대기업 총수답지 않은 구 회장의 행동으로 놀라는 일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첫 번째, 약속시간에 항상 먼저 와 있는다.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지만 어떤 약속을 해도 정해진 시간보다 20분가량 먼저 도착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 꼭 명함을 건넨다.
대한민국 총수들은 왜 그런지 모르지만 명함을 잘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구 회장은 "이거 뭐 별 쓸 데는 없는 겁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명함을 꼭 직접 건내 주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허례 의식을 차리지 않는다.
보통 대기업 총수를 생각하면 운전기사와 그를 도와주는 비서가 2~3명 정도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구 회장은 특별히 보좌가 필요한 약속이 아니면 혼자 나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약속이 끝나고 돌아갈 때도 직접 휴대전화로 기사에게 전화를 해 차를 불렀다고 하는데요.
위 세가지만 보아도 구 회장이 얼마나 권위주의와 먼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재계에는 이런 기업 총수가 흔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사람 자르지 마라

구 본무 회장의 경영 원칙은 무분별한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것과 장기적인 안목의 연구 개발(R&D) 투자, 고객 및 동업자와의 상생이었습니다.
그중 구조조정에 대한 거부감은 LG그룹 회장 취임 3년째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한 직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다고 하는데요. 구 회장은 자신의 재임 기간에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구조 조정안이 나오자 불같이 화를 낸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구 회장은 구조조정을 제안하는 CEO들에게 "당신들이 제대로 못해 경영이 어려운데 왜 사람부터 자르려고 하느냐"라며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떠나면서 남긴 그의 메시지

구본무 회장은 향년 73세인 2018년도 숙환으로 별세하였습니다.
뇌 수술 후 1년간 투병을 했고,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그의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잠들었고, 조용하고 간소하게 가족장을 치렀습니다.
평소 숲과 새를 좋아했던 구본무 회장은 LG상록재단이 공익사업으로 조성한 숲을 거닐며 머리를 식히는 것을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그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은 '조화'라고 강조했습니다.
사람들의 무덤으로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구 회장은 생전에 '수목장을 해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 회장의 타계 이후 그가 수목장을 한 것이 알려지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수목장에 대해 알게 되었고 기존에 비해 문의도 30~40프로 이상 많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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