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은 이른바 을사오적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입니다.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에 찬성하고 주도했던 인물들인데요.
일제의 핍박 속에 주권을 회복하고자 목숨을 바쳐 노력한 독립 선열들과 반대로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은 죽을 때까지 부족함 없이 호의호식하며 살았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1. 이완용 (1858 ~1926)

이완용은 학부대신으로 지금으로 치면 교육부 장관에 해당됩니다. 고종을 협박하여 을사늑약 체결과 서명을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1910년 한일 합병 이후 일본으로부터 백작 작위를 받았으며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됩니다. 그가 경기도와 전라도에 소유한 땅은 여의도 면적에 7.7배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당시 한국 남자 평균 수명이 32.4세에 불과했던 때 68세까지 살다 폐렴으로 죽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친미파가 득세할 듯하니 넌 앞으로 친미파가 되어라"
이완용은 죽기 전 아들에게 앞으로 친미파가 득세할 것이나 친미파가 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2. 이근택 (1865 ~ 1919)

이근택은 군부대신으로 오늘날 국방부 장관에 해당됩니다.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 강제병합에 협조한 인물로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고 조선 총독부 중추원 고문에 입명 됩니다.
을사늑약을 체결한 이근택은 집으로 돌아가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집안은 부귀가 지금부터 크게 시작될 것이니 장차 무궁한 복과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이근택은 55세에 사망했으며 당시 왕을 제외한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집인 99채의 별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부를 누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이지용 (1870 ~ 1928)

이지용은 내부대신으로 오늘날 행정 안전부 장관에 해당합니다.
일본으로부터 국권침탈에 협조한 공으로 많은 돈과 귀족 작위를 받고 59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호의호식하며 살았습니다.
4. 박제순 (1858 ~ 1916)

박제순은 외부대신으로 오늘날 외교부 장관에 해당됩니다.
한일 강제 합병 이후 경학원 대제학으로 임명되어 친일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조선 통치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조선 구관 연구회를 조직하고 일본 천왕 히로히토의 생일인 천장절에 참가하기도 합니다.
박제순이 59세에 사망할 때까지 많은 부를 이루었으며, 이후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은 아들들도 호의호식하며 일생을 보냅니다.
특이하게 그의 손자 박승유는 할아버지의 삶을 부끄러워하며 독립운동가로 나섰지만 매국노의 자손이라는 굴레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5. 권중현 (1954 ~ 1934)

권중현은 농상공부대신으로 오늘날 농림수산식품부, 산업통상 지원부 장관에 해당됩니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권중현은 임진왜란 선무 1등 공신인 이순신 장군의 9대손 어머니와, 권율 장군의 9대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권중현은 일본으로부터 국가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수여하는 훈 1등 욱일대수장을 받았으며, 노년에는 현 가치 6억 원에 해당되는 금액을 매년 연금으로 받으며 81세까지 천수를 누리다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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